팬이 없는 파워서플라이는 일종의 동경의 대상이 됐다. 팬이 있는 파워서플라이 사용자들에게 특히 더 그렇다. 팬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견 더 나아보인다. 왜? 팬을 없앤 만큼 제조사가 더 안정적으로 만들었으리란 신뢰가 밑에 깔린다. 여기에다 에너지 기반의 하드웨어이기 때문에 효율면에서 더욱 더 나을 것이라는 인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더 비싼 물건임에도 좋은 제품을 알아보는 이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많은 회사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시장 판도 속에서 3Rsystem AK 300 FL은 거꾸로 길을 가고 있다. 타사보다 월등히 낮은 가격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궁금증도 유발시킨다. '왜 싸지?', '싼데는 이유가 있을 거야' 이런 식의 생각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의문에 사로잡힌 이상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 AK 300 FL을 6달 가량 직접 사용해봤다.

다나와에서 2015년 6월 현재 인기 순위를 비교해봤을 때 AK 300 FL은 2위에 랭크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접할 수 있는 팬리스 파워서플라이는 총 9종이며, 그 중 2종이 80PLUS 골드 인증, AK 300 FL이 유일하게 무등급, 나머지는 전부 플래티넘 인증이다. AK 300 FL을 제외한 다른 제품들은 거의 출력이 500W에 수렴한다.

80PLUS의 에너지 효율 인증 여부와 상대적으로 적은 출력에 차이가 있으니 가격이 저렴하다고 일단 판단할 수 있다. 그 외에 무언가 더 저렴하게 내놓을 수 있는 이유가 더 있을 것이다. 제품 외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고, 내적인 요인도 있을 것이다.

출처www.realhardtechx.com

파워서플라이 데이터베이스로 유명한 '리얼하드테크X' 사이트에서 AK 300 FL을 찾아봤다. 골든타이거일렉트로닉테크에서 제조됐으며, 싱글 레일 20A로 240W를 출력한다고 확인할 수 있다. 이어서 3Rsystem이 제시하는 스펙도 살펴보자.

	DC 출력	+3.3V	+5V	+12V1	+5Vsb	-12V
	DC 전압 레귤레이션	±5%	±5%	±5%	±5%	±10%
	최소 전류	0.1A	0.2A	0.05A	0	0
	최대 전류	10A	10A	23A	2.5A	0.5A
	컴바인 와트	46W		240W	16W
	와트 출력	300W (동작 온도 0 ~ 40도씨)

+12V를 23A의 전류로 출력한다고 하지만, 컴바인 와트가 240W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다른 DC출력에는 큰 의미가 없다. +5V가 SSD에서 쓰이는 정도로 약간의 의미를 갖는다. +12V만 봤을 때 AK 300 FL이 가진 240W 출력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 직접 테스트해본 결과 결코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었다. 핵심은 인텔과 엔비디아의 저전력 기조에 있다.

제품 구성에 실격 사유는 없었다. 케이블 타이와 굵은 머리 나사까지 제공하는 여유로움이 있다. 물론, 패키지 자체가 고급스러운 구성은 아니다. 팬 있는 같은 가격대의 파워서플라이 수준을 생각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제품이다.

AK 300 FL의 외형에 특별한 고급스러움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본 이하의 외형은 아니다. 6면 중 5면에 타공망이 들어간 철제 섀시를 상상했을 때 딱 그 형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나름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며, 적당한 기대를 외면하지 않는 모습으로, 발열에 대비하는 기능성까지 갖췄기 때문에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 상 잘 보이지는 않지만, 내부에는 대형 방열판이 우뚝 서 있다. 타공망 덕분에 간접적인 쿨링을 기대할 수 있다.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차단 스위치를 제거하지 않았다. 평소 산소의 고마움처럼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기능이다.

케이블은 ATX 24핀을 제외한 나머지가 메쉬 처리되어 있지 않지만, 타이로 중간 중간 묶여 있어서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AK 300 FL 자체가 튜닝 목적이 아니므로, 적절한 설정으로 보여진다.

커넥터의 품질은 고가의 것들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하다. ATX 24핀과 +12V 4+4핀은 분리 및 결합되는 구조이며, 6+2핀 PCI-e도 마찬가지이다. SATA 파워 커넥터와 몰렉스(ide 4핀) 파워 커넥터는 각각 3개씩 제공된다. 무난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SATA 파워 커넥터를 최소 4개 이상으로 맞추기를 강력히 권한다. NAS에 AK 300 FL를 사용할 때 SATA 파워 커넥터 부족을 경험할 수 있었다. 물론, 몰렉스는 다양한 파워 커넥터로 변환할 수 있지만, 요즘 시대에 이렇게 많을 필요는 없다. 일단, SATA 파워 커넥터가 부족하다면, MOLEX to SATA 파워 변환 커넥터를 구해야 한다.

내부를 보는 것 대신 실제 사용 시 안정성을 확인할 것이다.

AK 300 FL을 실제로 조립해봤다. 케이스는 미들타워인 COX CL300 USB3.0. 사진 상 지포스 GTX 750이 꼽혀 있지만, 실제 테스트는 GTX 960으로 진행했다.

구체적인 사양은 i7 4790K(w/o OC), 기가바이트 Z97X-UD3H 듀러블 에디션, 삼성전자 PC3-12800 8GB x4, MANLI 지포스 GTX960 Black Knight X2 OC D5 2GB, 크루셜 M550 256GB, 써모랩 트리니티 QmaxUP, COX CL300 USB3.0, 3RSystem AK 300 FL이다.

조립 과정 상 문제는 없었지만, 한 가지가 착오를 유발했다. 파워서플라이 기판이 붙어 있는 쪽을 하단으로 간주하고 조립했을 때 파워서플라이에서 나오는 선들이 인접한 선정리홀에서 멀어져 CPU 전원 +12V 4+4핀이 짧아지게 됐다. 선 정리 홀을 통과해 꼽을 수가 없었다. 파워서플라이를 뒤집으니 해결됐다. 파워서플라이 내부의 기판이 뒤집어져 있는 것을 위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좋은 구성이라고 판단된다. 위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면, 먼지가 내부로 유입되기 때문이다.

 

부팅 후 5분 아이들 / 3D마크 파이어스트라이크 / <타이탄폴> 멀티플레이

실제 게임 플레이 시 120W 정도의 전력을 먹는 것으로 확인된다. 지포스 GTX 960이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엔비디아 맥스웰 아키텍쳐의 힘이기도 하다. VGA의 자체 전력 소모는 Techpowerup.com가 <메트로 라스트라이트>를 FHD 기준으로 960이 104W를 소모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론적으로는 AK 300 FL과 본 시스템에서 980도 가능할 것으로 짐작된다. Techpowerup.com에서 980의 게이밍 전력 소모를 156W로 측정했기 때문에 둘의 차이는 52W. 과연 AK 300 FL과 지포스 GTX 980이 한 시스템 안에서 공존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기회가 닿는 대로 이 부분을 테스트할 것이다.

파워 오프 시에는 사진에 없지만, 1.7W를 기록했다.

이번엔 AK 300 FL의 실제 사용 용도로 찜해둔 NAS로 테스트를 해봤다. 

인텔 셀러론 1037U, 삼성전자 PC3-10800 2GB x1, 웨스턴디지털 640GB WD6400AAKS x1, 도시바 2TB DT01ACA300 x2, 비트피닉스 콜로서스 mini-ITX 케이스, 기본 팬 120mm 2개로 구성했다.

이번에는 AK 300 FL을 내부 기판이 아래로 가도록 조립했다. 파워서플라이 내부의 열이 위로 자연 발산될 수 있다. 파워서플라이 전용 채임버 덕분에 자연 먼지 유입이 없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불의의 CPU 오버히트 다운으로 인한 재부팅을 제외하고 NAS를 순수히 30일 넘게 켜두어도 절대 전원 문제로 인한 시스템 다운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상도 당연히 가능하며, 현재에도 가동 시간은 계속 누적되고 있다.

단가 면에서 어댑터보다 훨씬 저렴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종전에는 AC2DC 어댑터와 DC2DC 파워서플라이를 통해 NAS를 간이 구성했었다. 국내에서는 보통 120W 수준의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200W 혹은 그 이상을 구하려면 중국 오픈 마켓을 통해야 한다. 총 구매액은 AK 300 FL을 훌쩍 뛰어넘는다.

쿨링 팬을 없애고자 하는 의도 때문에 예상보다 과도하게 많은 돈이 들어갈 때 AK 300 FL은 완벽한 대안이 된다.

자작 NAS에서 추가적 SATA 컨트롤러 없이 인텔 칩셋 메인보드만 사용할 경우 HDD를 최대 6개까지 연결할 수 있다고 기대했을 때 이를 전부 이용하려면 저출력의 어댑터로는 택도 없다. 2~3개 정도가 한계이다. 이 정도 사실만 제시해도 NAS 사용자들은 대단한 메리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파워 오프 / 부팅 시 최대 / 부팅 후 5분 아이들 / HDDtoHDD 파일 카피 (순서대로)

전력 소모를 측정했다. 역시 HDD가 부팅 시 전력을 많이 먹었다. 물론, 저 상태로 오래 가는 것은 아니고, 바이오스 진행 단계에서 2~3초 정도 저 수준에서 머물다가 금방 떨어진다. 어쨌든 부팅할 때 HDD가 아이들 대비 거의 2배(본 케이스에 한해)의 전력을 먹으니 NAS를 꾸밀 사용자들은 반드시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안될 것이다.

300W라는 용량은 얼핏 부족한 것 같이 다가온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력이 얼마인지 앞서 확인했다. 그럼에도 부족하다고 마음 속에서 누군가 외치고 있다. 이유는 뭘까?

300W라는 용량은 CPU와 GPU가 전력을 많이 먹기 시작했던 '그' 시절을 거치면서 용도가 불분명해졌다. 인텔 CPU 코드네임 '프레스캇'이 등장했던 2004년이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300W는 주로 사용됐었던 파워서플라이 용량이다. 이제 시대는 최소 500W를 파워서플라이의 기본적인 출력 영역으로 여기고 있다. 이런저런 부침이 있었으나 어쨋든 현재의 관점에서 AK 300 FL은 저출력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전력의 지점을 파악하는 작업이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알면 AK 300 FL은 절대 부족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i7 4790K와 지포스 GTX 960의 조합에서 게임을 할 때 고작 120W 정도만 소모했다. 더 상급의 그래픽스카드도 가능할 것이다. 엔비디아의 맥스웰 마이크로아키텍쳐는 현존 최고의 에너지효율을 가진 GPU다. 현재 인텔 CPU 하스웰 리프레시도 마찬가지지만, 다음 세대인 브로드웰과 스카이레이크에서 더 높은 효율을 보일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전력 효율은 지금도 대단하지만, 앞으로가 더 기대되고 있다.

AK 300 FL의 꿀을 빨아낼 수 있는 시스템 빌드 업의 스윗 스팟을 찾아내야 하는 작업을 개인이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은 이 제품의 외적 옥에티다. 제품 자체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다.

컴퓨터를 사용하다보면, 단순한 데스크탑 형태를 떠나 다양한 응용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또, 시스템에 두루 붙어 있는 팬을 없애고 싶을 때도 있다. 이럴 때 팬이 없는 파워서플라이는 아이디어의 샘이 된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성능 대비 더 많은 값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 달갑지 않다. 가격적인 면에서 AK 300 FL의 매력은 독보적이다.

안타깝게도 3Rsystem은 AK 300 FL을 최근 단종시켰다. 파워서플라이 라인업을 정리했다고 한다. 파워서플라이 시장의 가격 전쟁으로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 제품만큼은 팬리스로써 좋은 경쟁력을 갖고 있었는데, 매우 아쉽다. 3Rsystem이 다시 한 번 도전 의지에 불붙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많은 응원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이 리뷰가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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