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독재자의 한마디.jpg
이디 아민은 1971년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하였다.
1972년 경제면에서의 우간다화 정책을 내세워 5만여 명의 우간다 거주 아시아인을 추방하였고,
또한 반대파를 대량 학살하는 등 독재자로 군림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1976년에는 자신을 종신 대통령으로 선언하였다.
1978년 10월 탄자니아를 침공하였으나 탄자니아군과 국내의 반대파인 ‘우간다국민해방전선(UNLF)’의 반격을 받고
패배하여 리비아로 망명하였다가,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겼다.
2003년 8월 16일 사망하였다.
- 2018-04-01 22:02 이야기 > 게임메이커로는 게임 못 만들겠네요 *4
- 2018-04-01 12:51 이야기 > 게임 만들고 싶어요 *5
- 2018-04-01 12:21 이야기 > 와!!!!!!!!!.jpg *4
- 2018-03-12 22:07 이야기 > 와치독스.png *4
- 2018-03-04 00:25 이야기 > 갑분싸.gif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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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 아민 집권 중 저지른 엽기적이고 추악한 행각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다. 자국민을 수도 없이 살해하고 탄압한 이디 아민은 기분에 따라 똑같은 죄라도 누구는 재판도 없이 무죄 석방시키고 누구는 지독한 고통 속에 총살당하거나 쇠망치에 맞아 죽는 처벌을 내렸다. 특히 아민이 직접 고안한 고문들은 정말 악명 높았는데 남자의 경우 성기를 쇠꼬챙이로 찍거나 잘랐고 여자의 경우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지독한 성고문을 당했으며 젊은 여자는 처형 후 성기를 도려내 먹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정작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 성직자들 앞에서 사람을 죽였어도 먹지는 않았다고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결국 충실한 이슬람 신도가 아니라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직자들은 아민을 추방시키자고 건의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에 맞섰다는 점 하나로 편의를 봐주었다.
자신의 정적들의 목을 잘라 그 머리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그것을 보면서 희희낙락했으며 인육을 먹고 국민들 앞에서 자신이 분석한 인육의 맛을 논하는 가히 악마적 행각을 벌였다.
또한 시체를 비료로 처리하는가 하면 강에 던져 악어에게 주기도 했다. 그래서 아민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우간다의 악어들은 애써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서 동물학자들이 경악할 정도로 게을러졌다고 한다. 그나마도 악어가 먹고도 썩어 남아돌 정도로 시체가 많아서 우간다-케냐 지방의 주요 댐인 날루발레 댐 관리요원들의 주 업무 중 하나가 상류에서 떠내려와 댐 수로를 막고 있는 시체 치우기였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도소의 죄수들을 빽빽이 못이 박힌 마루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했고 밤이 되면 독방에 처넣었다. 한 죄수를 묶어놓고 다른 죄수로 하여금 그 머리를 망치로 때려 부수게 하는가 하면 며칠간 굶긴 그들에게 다른 죄수의 시체를 고기로 주기도 했다. 후술하겠지만 80년대 전기 영화에서 아주 리얼하게 나온다.
아민에게는 40명 정도의 자식들이 있었고 6-7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그 중의 3명은 곧바로 싫증이 나서 이혼했다. 이혼한 아내 중 하나였던 케이는 이혼할 당시 아민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이혼한 후에 아민 몰래 낙태해버렸다. 그것을 알게 된 아민은 불같이 화를 내며 케이와 수술을 한 의사까지 살해했고 케이의 시체의 팔다리를 절단해 바꾸어 붙인 뒤 헤어진 아내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는 아민의 친척들에게도 행한 짓이다. 자신의 숙모가 식탁 위에서 이런 상태로 되어있는 걸 보게 된 아민의 가까운 친척은 그날로 우간다를 탈출했다.
그리고 주술에 취해 자신의 열 살 난 아들까지 살해해서 아이의 심장을 꺼내 먹은 전적도 있다. 그야말로 패륜.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보복을 한답시고 빅토리아 호수 옆에 케이프타운이라는 이름의 폭격장을 만든 적이 있다. 아프리카 통일기구(OAU) 수뇌회의(1975.7.28~8.1) 당시 벌어진 일인데 이때 폭격이 실패하자 해당 부대 지휘관을 그 폭격장에 묶어놓고(...) 재폭격을 실시했다. 이때는 명중(...)했다. 이에 감명받았는지는 몰라도(...) 북한에서도 비슷한 처형법을 도입했다. 일명 박격포 처형!
한술 더 떠서 아프리카 통일기구 수뇌회의가 열렸을 때에는, 자신이 백인들을 굴복시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우간다 내에 있던 백인 사업가 여섯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서 자신의 가마를 들게 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독사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 외교 사절에게 권했고 각료회의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장관이 있으면 즉석에서 뺨을 때리는가 하면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다리 밑으로 기어가도록 명령했고 권투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에게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흑인, 백인 여성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을 즐겼으며 모든 공문서에 적히는 자신의 이름 앞에는 '각하, 원수, 모든 지상 동물과 바닷속 모든 물고기들의 신, 좁게는 우간다에서, 넓게는 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을 무찌른 정복자' 라는 긴 수식을 붙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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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네요.. ;;
이디 아민 집권 중 저지른 엽기적이고 추악한 행각은 역사상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들다. 자국민을 수도 없이 살해하고 탄압한 이디 아민은 기분에 따라 똑같은 죄라도 누구는 재판도 없이 무죄 석방시키고 누구는 지독한 고통 속에 총살당하거나 쇠망치에 맞아 죽는 처벌을 내렸다. 특히 아민이 직접 고안한 고문들은 정말 악명 높았는데 남자의 경우 성기를 쇠꼬챙이로 찍거나 잘랐고 여자의 경우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싶을 정도로 지독한 성고문을 당했으며 젊은 여자는 처형 후 성기를 도려내 먹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정작 아민은 사우디아라비아 성직자들 앞에서 사람을 죽였어도 먹지는 않았다고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결국 충실한 이슬람 신도가 아니라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성직자들은 아민을 추방시키자고 건의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무엇보다 이스라엘에 맞섰다는 점 하나로 편의를 봐주었다.
자신의 정적들의 목을 잘라 그 머리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그것을 보면서 희희낙락했으며 인육을 먹고 국민들 앞에서 자신이 분석한 인육의 맛을 논하는 가히 악마적 행각을 벌였다.
또한 시체를 비료로 처리하는가 하면 강에 던져 악어에게 주기도 했다. 그래서 아민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 우간다의 악어들은 애써 사냥을 할 필요가 없어서 동물학자들이 경악할 정도로 게을러졌다고 한다. 그나마도 악어가 먹고도 썩어 남아돌 정도로 시체가 많아서 우간다-케냐 지방의 주요 댐인 날루발레 댐 관리요원들의 주 업무 중 하나가 상류에서 떠내려와 댐 수로를 막고 있는 시체 치우기였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교도소의 죄수들을 빽빽이 못이 박힌 마루 위를 맨발로 걸어가게 했고 밤이 되면 독방에 처넣었다. 한 죄수를 묶어놓고 다른 죄수로 하여금 그 머리를 망치로 때려 부수게 하는가 하면 며칠간 굶긴 그들에게 다른 죄수의 시체를 고기로 주기도 했다. 후술하겠지만 80년대 전기 영화에서 아주 리얼하게 나온다.
아민에게는 40명 정도의 자식들이 있었고 6-7명의 아내가 있었지만 그 중의 3명은 곧바로 싫증이 나서 이혼했다. 이혼한 아내 중 하나였던 케이는 이혼할 당시 아민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는데 이혼한 후에 아민 몰래 낙태해버렸다. 그것을 알게 된 아민은 불같이 화를 내며 케이와 수술을 한 의사까지 살해했고 케이의 시체의 팔다리를 절단해 바꾸어 붙인 뒤 헤어진 아내들에게 보여주었다. 이는 아민의 친척들에게도 행한 짓이다. 자신의 숙모가 식탁 위에서 이런 상태로 되어있는 걸 보게 된 아민의 가까운 친척은 그날로 우간다를 탈출했다.
그리고 주술에 취해 자신의 열 살 난 아들까지 살해해서 아이의 심장을 꺼내 먹은 전적도 있다. 그야말로 패륜.
그리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유명한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보복을 한답시고 빅토리아 호수 옆에 케이프타운이라는 이름의 폭격장을 만든 적이 있다. 아프리카 통일기구(OAU) 수뇌회의(1975.7.28~8.1) 당시 벌어진 일인데 이때 폭격이 실패하자 해당 부대 지휘관을 그 폭격장에 묶어놓고(...) 재폭격을 실시했다. 이때는 명중(...)했다. 이에 감명받았는지는 몰라도(...) 북한에서도 비슷한 처형법을 도입했다. 일명 박격포 처형!
한술 더 떠서 아프리카 통일기구 수뇌회의가 열렸을 때에는, 자신이 백인들을 굴복시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우간다 내에 있던 백인 사업가 여섯 명을 잡아다가 노예로서 자신의 가마를 들게 하기도 했다
살아있는 독사를 그 자리에서 회를 쳐 외교 사절에게 권했고 각료회의 중에 마음에 안 드는 장관이 있으면 즉석에서 뺨을 때리는가 하면 두 다리를 벌리고 서서 다리 밑으로 기어가도록 명령했고 권투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에게 도전장을 내기도 했다. 흑인, 백인 여성과 함께 잠자리에 드는 것을 즐겼으며 모든 공문서에 적히는 자신의 이름 앞에는 '각하, 원수, 모든 지상 동물과 바닷속 모든 물고기들의 신, 좁게는 우간다에서, 넓게는 아프리카에서 대영제국을 무찌른 정복자' 라는 긴 수식을 붙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