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본래, 제가 다른 곳에 포스팅한 글입니다.

그러나 많은 좋은 분들이 모여있는 이 오씨겜에도 한번 쯤 생각해보면 좋은 문제일 것 같아, 여기에도 글을 남기고 의견을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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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문화 매체에 비해 게임의 역사는 굉장히 짧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게임은 체스나 장기와 같은 전통적인 게임이 아닌 전자 기기로 이루어지는 비디오 게임과 PC게임등을 통틀어 게임이라고 말하는 것임을 알린다.

우리는 하드웨어 기기의 기하급수적인 발전속도의 수혜를 입어 1년이 다르게 발전하는 게임의 외관을 본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래픽으로 구현된 멋진 세상들. 그러한 퀄리티의 세상 속에서 게임을 플레이 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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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 오브 듀티 1, 2003년 작 / 

- 콜 오브 듀티:어드벤스드 워페어 2014년 작)



위 사진을 보아라, 10년이라는 짧은 시간에 우리는 상상도 하지 못할 비디오 게임 산업의 발전을 이루었다. 규모에서, 그리고 그 게임 자체의 외관과 모든 번쩍거림에서 느껴질 수 있듯이 말이다. 꿈에만 그렸던 화려한 폭발이 남발하며 펼쳐지는 대규모 전투, 현실과 같은 비쥬얼로 플레이어의 혼을 빼놓는 압도적인 스케일과 그래픽,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은 케릭터들의 표정과 움직임, 행동, 애니메이션 이 모든 것은 모션캡쳐를 이용한 게임 개발을 비롯하여 언급했다시피 진보적인 하드웨어의 발전이 계속되기에, 또 그러한 소비를 촉진해주는 소비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화려한 그래픽으로 중무장 한 압도적인 규모의 게임. 우리 모두가 바랬던 그런 드림카 같은 존재는 이제 현실이 되었고, 이제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수준만큼의 발전을 이룩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말하고는 한다. 이번 작품이, 거의 10년 전의 같은 프랜차이즈의 첫번째 작품만하지 못하다고. 전작만 하지 못하다고. 역시 처음보다 나은 후속은 없다고. 옛날에, 그래. 그때 그게 정말 재밌었지. 라고 말하며 화려하고 멋진 최신작들을 제치고 과거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대체 왜, 그들은 누가 보아도 멋지고 화려한 빛나는 게임 패키지를 받아들지 못하고, 저쪽 장롱 어딘가에 수북히 먼지가 쌓여 잠들고 있는 그때 그 시절 조잡한 CD케이스에 들어있는 과거의 작품을 찾는 것인가. 우리는 궁금하다.

그리고 그들의 한탄에 어렴풋이 동의하면서, 또 어쩔때는 그것이 의미없는 과거 보정, 추억팔이와 같은 것쯤으로 치부하면서 그들의 '한 때'를 무시하는 자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게임성과 흐르는 시간, 왜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필자는 이것이 항상 궁금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자신이 소위 구세대, 신세대라는 타이틀을 잠시나마 벗어두고 나의 글을 읽으며 허심탄회하게 그간 게이머라면 한번쯤 가져보았을만한 찝찝한 그 기분을 다같이 조금이나마 풀어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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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지던트 이블 1, 1996년 작

- 레지던트 이블 6, 2012년 작)



밀폐된 협소한 공간, 고정된 카메라 앵글,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한정된 탄약과 자원을 펼쳐지는 무시무시한 좀비와의 사투. 그것이 우리가 기억하는 전설적인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첫인상이었다. 지금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그래픽으로 이루어진 게임을 하며 가슴 졸이고 깜짝깜짝 놀랬었던 그 때 그 시절. 우리는 그 때의 그 기억이 그때의 그 게임 경험이 3년전 출시된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의 정식 넘버링 최신작 레지던트 이블 6 보다 수백배 낫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것보다 나은데?"라는 질문이 되돌아오기 마련. 

대다수의 게이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뭐긴 뭐야? 게임성이지."


대부분의 이들은 과거의 그것이 오늘날의 그것보다 게임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이러한 현상은 장수하는 프렌차이즈의 게임일수록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이러한 과거작/신작에 대한 비판과 옹호는 이제는 당연스럽게도 계파로 나뉘어져 치열한 키보드 배틀을 벌이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래, 필자도 인정한다. 게임은 그래픽에 앞서 게임성이 우선시 되어야하는 것을. 그렇다면 그 "게임성"이라는 것, 현대의 비디오 게임에 와서는 그 단어는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논쟁이나 주장을 펴기에 앞서 그 단어를 현대적으로 재조명 하였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게임성이라는 단어를 어떨 때 사용하는지에 대해 정확한 공감을 하고 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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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메타크리틱"이라는 평론 사이트는 이러한 '게임성'에 대한 기준과 게임의 소위 점수를 매겨 사람들의 구매에 있어 최대한 객관적인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지표를 제공해준다. 혹자는 메타크리틱 평가 점수야말로 오늘날 비디오 게임의 '게임성'을 평가하는데 있어 가장 최적의 기준이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설사 메타크리틱 점수가 평가의 지표라는 의견에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필자가 조금 전 제기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에는 부족하다. 메타크리틱의 점수가 게임성의 본질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메타크리틱 점수가 게임성과 직결되는 것이라면 그러한 평가에 있어서 어떠한 것을 "게임성"이라고 단정짓고 기준을 매길 수 있는지가 모든이들에게 정립되어야한다. 그러나 메타크리틱 점수는 우리에게 "어느 것이 이정도구나."하는 대략적인 기준이 될지언정 게임성 그 자체가 되지는 못한다. 합리적인 게이머라면 메타크리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두 자신만의 기준이 분명히 존재할 터이다. 


그렇다면 게임성이라는 게임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긴 시간 고민한 끝에, 필자가 내린 정의는 다음과 같다.


절대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며, 만약 '게임성'이라는 단어가 누군가의 취향이나 만족스러운 기분, 욕구를 저격하는데 사용된다면 자신의 문화적 욕구와 욕망에 대한 성취의 수준이 남들보다 뛰어나고 우월하다는 특권 의식이나 선민 의식을 과시하는데 쓰이는 도구가 되는 것. 이것이 필자가 생각한 게임성이다. 


그렇다면 "절대로 정확하게 정의를 내릴 수 없는 것"이라는 말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할 것이고,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게임"이라는 것에 대한 개개인의 본질은 모두 다르다. "게임"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생각나는 자신만의 그것, 누군가는 화려한 이펙트가 작렬하는 전장 속을 뛰어다니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을 진정한 게임속의 재미 즉, 게임성이라고 생각할 것이고 그 어떤가는 가상의 연애를 하며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감정적인 동요 혹은 공감을 진정한 게임의 기준이 된다고 생각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치밀한 계획 수립과 그것이 잘 실천되었을때의 그 만족감과 성취감을 '게임'과 '게임성'이라는 요소에 절대적인 본질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게임성은 절대로 정의를 내릴 수 없는 단어이다. 그렇기에 게임에 있어서, 모든 것에 있어서는 "장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안다. 게임성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애매모호한 그 뜬구름 같은 단어라는 것을. 그리고 그 형체 없는 뜬구름일지라도 게이머라면, 제대로 된 게이머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그 어떠한 "게임성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한 대다수의 게이머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그러니까 그러한 게임성을 갖춘 게임이 출시되면 그것을 우리는 "명작"이라고 칭하며 상당한 호평을 내린다. 


하지만 본론으로 돌아가서 게임 외적인 측면의 발전과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하드웨어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점점 더 이 "명작"을 발굴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느낀다. 즉 게이머들이 갈구하는 게임성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게임이 점점 더 적어지고 있다는 것으로 다시 정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로, 게임성 있는 작품들을 손에 받아들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그 과거를 자신도 모르게 예쁜 보정 효과로 뒷처리를 하는 바람에 과거 그때 그 시절의 기분, 돌아갈 수 없는 그 시간의 그리움을 떠올리며 어느덧 절대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과거의 작품의 "게임성"이라는 것을 이용해 오늘날의 작품을 매도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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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는 고갈된다. 늘 그랬듯이. 
 
사막 폭풍이 몰아치는 중동의 어느 한 도시, 그리고 그 도시 안 도로에서는 미군의 험비 대열이 불안한 정적을 유지한 상태로 천천히 경로를 따라 이동한다. 플레이어는 미군의 한 병사. 그는 쥐죽은 듯한 정적 속에서 자신들을 쳐다보는 낯선 외지인들의 시선을 느끼며 사방을 떨리는 손으로 잡고 있는 소총을 겨누고 경계한다. 그리고 마침내 좁은 골목길로 들어선 순간, 어느 집 옥상에서 날아오는 한 발의 로켓포로 인해 선두 차량이 산산조각 나고 곳이어 사방에서 두건을 쓴 테러리스트들이 미군 행렬을 공경한다. 플레이어는 험비의 전복으로 정신을 잃지만 가까스로 동료의 도움으로 정신을 차리고 대원들과 함께 적들을 사살하며 그곳을 빠져나간다...

어떠한가? 우리는 많이 어디선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어디선가 보아왔던 그 어떠한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장면을 처음보았을 때 느꼈었던 그 짜릿한 전율과 긴장감, 눈 앞에 펼쳐지는 아슬아슬한 순간들까지. 우리가 이제 이러한 것 장면에 더이상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이것이 아주 기본적인 "클리셰"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존재하던 어떠한 소재를 극적으로 만들어내는 것. 이것이 효과적인 연출과 그래픽으로 빛날 수 있다면 이러한 작품은 곧 플레이어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게 되고, 이러한 작품은 추후에 명작으로 남으며 그와 유사한 모든 작품은 본래 이것을 실천했던 그 작품과 '게임성'을 운운하며 비교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소재는 언젠가 고갈된다. 그리고 여러가지 표현력이 허용되는 게임에서는 극적인 장면들로 소소하게 연출하며 조금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단 한번에 터뜨려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러한 소재의 고갈이 더욱 빠르다. 

우리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 명작들은 대부분 이러한 이유에서 남아있다.

우리가 그토록 지겨워하는 "클리셰'를 처음 보여준 작품이기 때문에. 
지구를 정복한 외계인들에 저항군이 되어 맞서 싸우고, 미군이 되어 세계를 구하고, 특수부대가 되어 비밀을 밝혀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우리에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설사 이러한 클리셰가 오늘날의 게임에 요소로서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이제 게임의 한 요소로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 장면이 들어가니 예전의 그 게임을 카피한것이다. 그 작품만 못하다가 아니라, 그 작품의 영향력이 컸기 때문에 이제 이 장르의 '필수적 요소'로 귀결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며 그 장면을 오늘날에 이룩한 여러가지 장점들과 어떻게 혼합해 내었느냐를 중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명심하자. 소재는 반드시 고갈된다. 신선한 소재는 더욱 더 아주 빠른 속도로 고갈되며, 이제 대부분의 것들을 우리가 이미 보았을지도 모른다. 

어떠한 소재를 처음 "클리셰화" 시킨 그 작품을 자신의 기억속에 화석같이 두고 그것만을 떠올리며 오늘날의 작품을 바라본다면 당신은 절대로 더이상 "게임성 뛰어난 작품"을 보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기억은 그 때 그 시절에 멈춰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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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극"의 저급화 


"빵빵 터지는 자동차, 빌딩! 자! 시원하게 보셨죠? 그럼 60달러를 주셔야 합니다."


게임으로서 우리는 여러가지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느낀다. 어떠한 이는 강렬하고 반전 넘치는 스토리로, 어떤이는 어렵게 얻어낸 성취감과 그에 따른 보상으로, 어떤이는 시원하게 무언가를 쏘는 것으로. 진정으로 "게임성이 좋은 게임"이라면 이러한 이들의 욕구를 모두 완벽히는 아니지만 어느정도 살살 건드려주면서 그들의 잠재되어 있는 스트레스와 욕구를 조금씩 풀어주며 자연스럽게 게임 세계에 몰입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현실적인 세상이 고도화 되고 스트레스를 받는 지수가 높아지면서, 이러한 영향은 자연스럽게 대형 게임사의 악덕적인 제작기법과 맞물리며 우리가 게임으로부터 느끼던 '성숙한 자극'은 어느 순간 우리도 모르게 점점 '저급화'되어 가고 있다. 


무언가로부터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자극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것은 굉장히 쉽게 맛과 포만감을 느낄 수 있지만 결론적으로 몸에 악영향만 끼치는 인스턴트 푸드와 같다. 이러한 자극의 위험성은 바로 개개인도 모르게 이러한 자극에 적응되어 간다는 것인데, 우리는 조금만 주위를 둘러봐도 상당히 진부한 이야기에 덕지덕지 과대한 폭발 효과만 덧붙이고 마초스러운 남성 케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스토리가 뭐 어때서? 재밌기만한데."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을 쉽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에게 만약 그러한 것이 재미를 느낄만한 "게임성"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비판할 이유는 없다.


다만, 게임 산업과 게이머들 자신 스스로에게 절대로 발전적인 방향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해야만 한다.


우리가 요즘 게임이 게임성이 없다. 전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방향이 고착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이러한 게임을 지지해준 우리의 잘못도 간과할 수는 없다. 어떠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문화 매체를 만드는 것은 결국은 수요자 자신 스스로이다. 저급한 수요를 원하는 자들이 많으면 그러한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미디어를 내놓는 것이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이다. 


진정으로 조금 더 '성숙한 게임성'을 가지고 있는 게임을 원한다면, 무조건적으로 어떠한 게임을 비판하고 공격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직 그것을 체험해보지 못해 그것이 정말로 재미있고 세련된 자극으로 믿고 있는 그것의 수요자들을 올바르게 돌려 놓는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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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부함과 신선함, 그 미묘한 차이


"명작은 완전히 새로운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기존의 존재하던 것을 어떻게 바꾸고 비트느냐. 이것이 명작을 정의한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에서 언급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명작을 접한다.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며 출시되는 작품마다 상당한 찬사를 받으며 자연스레 지갑을 열게 되는 작품들, 위 사진에 언급된 작품들도 우리가 '명작'으로 인정할만 한 작품, 혹은 출시 예정작들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이러한 게임의 플롯, 그러니까 이러한 시리즈가 전통적으로 출시되며 유지하고 있는 플롯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시대에 따라 어떠한 요소가 들어가야 명작이 된다. 라고 하는 "트렌드"는 있지만 그 트렌드가 곧 명작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위 작품들이 보여주듯 어떻게 보면 이러한 작품들은 상당히 진부하다.

매번 비슷한 소재에 비슷한 시스템, 비슷한 무언가 우리가 항상 보아온 비슷한 것들이 게임을 둘러싸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명작으로 칭한다.우리는 이러한 게임에서 제공하는 "약간의 비틈"이 거대한 변화로 느껴지게 만드는 알 수 없는 무언가를 공통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깊이 있는 스토리, 더욱 더 세분화 된 게임 내적 요소들, 플레이어를 배려하면서도 난이도를 망치지 않는 UI와 도움을 주는 시스템들. 생각보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우리는 이 프렌차이즈의 게임성에 대한 신뢰가 있기에 그러한 모든 것들을 종합하여 호평한다. 


"클리셰"로 가득찬 장면들을 많이 마주치지만 우리는 이러한 작품에서는 그것이 지루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분명 어디에선가 본 장면이지만 신선하게, 또 새롭게, 오늘날 가지고 있는 모든 장점과 노하우를 결합한 그 클리셰스러운 장면들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그 때 그 시절만큼은 아닐지라도, 카타르시스와 성취감을 느낀다. 


진부함을 신선함으로 만드는 것은 노력이다. 


성공적인 게임의 선례가 많아질때마다 게임을 제작할 때 게임에 들이는 개발진의 노력은 적어질 수 밖에 없다. 성공한 선례가 있으면, 그에 따르면 최소한 망할 일은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경계를 가져야 한다. 


언제까지나 "진부함"과 "신선함" 그 미묘한 차이를 가지고 게이머들 간의 논쟁과 설전을 벌일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두 가지 중대한 갈림길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고 그것을 잘 이루어내는 작품에는 그에 맞는 찬사를, 그러지 못하는 게으른 작품에게는 그에 맞는 합당하고 합리적인 비판을 해야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러한 경계는 모호해질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게임의 "게임성"을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에게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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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사랑받는 프렌차이즈들)



시간이 지나도 게임성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시대의 흐름에 비해 우리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해서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실수가 과거의 그 어떠한 강렬한 기억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과 맞물리고, 또 점점 빠른 시간안에 더 강렬한 자극을 원하는 신세대 게이머들 그리고 그러한 것을 어느정도 강제하는 사회 풍토가 맞물리기도 하며 그러한 것을 놓치지 않고 최소의 노력으로 이익을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일부 대형 기업들의 발빠른 부정적인 움직임 때문에 그러한 풍토가 더욱 더 고착화 된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우리는 게임성이 시간에 비레하여 발전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가 다음과 같음을 분명하게 알아야한다. 


게임이든, 어떠한 매체든 결국은 수요자가 원하는 자극의 수준에 맞추어 어떠한 상품, 작품은 성공하고 또 다시 나오게 되어있다. 

우리가 어떠한 프렌차이즈의 새로운 작품이 등장할 때마다 의미없는 게이머 간의 소모전을 벌일 때 슬며시 뒤에서 웃으며 우리를 방관하는 것은 그러한 것을 은근히 조장하며 같은 아니 어쩌면 더욱 저급한 자극과 게임성으로 포장한 상품들을 내놓는 일부 기업들임을 분명히 인지해야한다. 


어쩌면 우리는 빠르게 배불러질 수 있고 맛이 좋다고 느껴지는 이러한 인스턴트 제품에 이미 익숙해져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군가라도 아직 이러한 트렌드가 "정상적이지 않다."고 자각하고 있다면, 아직 그러한 추세를 막을 수 있는 작은 시도를 시작하는 것도 늦지 않았다. 아직 양심을 발휘해 과거의 높은 수준의 게이머적 욕구와 추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작품을 "노력"과 "열정"을 들여 정성스럽게 작품을 만들어주는 곳이 많이 남아있다.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버리는 순간, 그 때가 되면 우리는 너무 늦어서 결국은 우리가 '비정상'이 될지도 모른다. 




(원문: http://blog.naver.com/timzzang7/22040167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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