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중에서 10편은 '10-2' 라던가 '인터내셔널' 같은 걸로 꽤 설왕설래 했던 전례가 있다. 그러다 13편에 가서는 일단 매트릭스처럼 3부작 분기를 깔고, 그 와중에 외전들까지 분기를 더해서 이래저래 더 말이 많았었다. 이게 다 그 'Fabula Nova Crystallis' 세계관 때문인데, 전례 없이 어둡고 또 어른들의 사정이 난무하는 이런 이야기는 올드 팬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는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체계 구축이 큰 불만 없이, 되려 호평 속에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게임이 잘 나온 덕분이 크다. 특히 외전으로 발매된 '파이날 판타지 영식(Final Fantasy Type-0)'은 이제껏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중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피와 음모와 인간 군상들의 고통을 디스플레이에 하나 가득 담은 작품이다. 배트맨 시리즈에 비견해 본다면, '다크 나이트' 계보와도 같은 포지션이겠다.

과거에도 명작으로 평가가 자자했던 게임이었는데, 처음 선보였던 플랫폼이 PSP였다. 때문에 소스 자체가 워낙 예전 것. 그래서 HD 리마스터링 소식이 나왔을 때, 다른 게임들처럼 업스캔 정도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다 정작 게임이 나와보니, 이건 아예 새롭게 만든 작품이 나왔다. PS4에서 돌려도, PS3 급 게임을 하는 그런 느낌이다. 비주얼과 최적화 측면에서 기대 이상이다.

▲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 중에서, 매우 드물게도 '피'가 철철 넘쳐 흐른다. 이 부분 꽤 주의 요망.

적어도 '영식'이 나오기 전에도 파이날 판타지 게임 속에서 양민학살은 심심찮게 있었다. 운석도 떨어지고 지반이 반전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대참사가 많은 세계였었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그래도 하나 지켜진 것이 있다면 시체는 주/조연급 캐릭터만 가끔 나왔을 정도. 그리고 무엇보다 피는 보이지 않았다. '영식'은 그러한 전례가 깨어짐과 동시에, '피바다'란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아비규환 지옥도를 그린다.

게임의 시작은 백호 크리스탈을 섬기는 미리테스 황국의 무장병력이 현대화된 화기로 중무장을 하고서 주작 크리스탈을 섬기는 루브룸 주작령에 침공하는데에서 시작한다. 마도병기로 주작 크리스탈을 무력화시켜서 마법을 못 쓰게 된 주작령 사람들에게 중화기를 난사하니 벌어지는 상황이야 뻔한 것. 이로 인해서 처음 시작부터 꽤나 무거운 기분으로 게임을 이어가게 만든다.

꽤나 시나리오와 캐릭터에 대한 설명 측면에서 이해도가 낮으면 좀비만 없을 뿐 고어 게임의 반열에 들기 십상인데. 여기에서 이번 발매판의 특징인 '한국어 버전'이 위력을 발휘한다. 과거 PSP 버전에서는 그냥 스킵하기 바빴던 그런 영상과 씬들이 다들 얼개를 맞춰주므로 이제는 PSP가 아닌 TV를 앞에 두고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를 다시금 복기하게 된다. 그리고 더 기분은 어두워진다.

▲ 과거 PSP 그 작은 화면에서 보던 걸 40~50인치 급 디스플레이에서 보면 '그냥 다른 게임'

과거에도 '정화' 목적으로 존재하는 요소가 2회차 플레이로 학원물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이와 별도로 HD 버전으로 오면서 하나 더 추가된 부분이 이야기와 이야기를 잇는 '전투'의 가치 변화겠다. 어떤 측면에서는 하향, 어떤 측면에서는 상향이 존재하는데, 이 부분은 아무래도 플랫폼 자체가 포터블에서 콘솔로 바뀌었다는 점과 그 궤를 같이 한다.

PSP 시절에는 거기에 맞는 스타일의 전투를 즐길 수 있었다. 워낙 난이도가 높게 셋팅되었고 이야기는 어둡고 게임은 어려운 삼중고에 시달리는 게 워낙 극명하다보니, 아무래도 손에 짝짝 붙는데 더 집착하게 되는 건 당연. 그런데 이게 화면을 중앙에 둔 휴대용 게임기가 아니라 PS4로 하게 되면 여백이랄까 할 수 있는 게 생긴다. 카메라를 비롯해서, 옛날 생각이 많다면 은근히 고생할 부분들이 있다.

반대로 상향된 부분은 비주얼 측면이다. 그냥 업스캔만 덜렁 하고 만 것이 아니라, 레벨 디자인부터 소환수 리뉴얼 등등 장인의 혼이 느껴질 정도다. 콘솔로 오면서 필드가 넓어지고 그에 따라 화면을 채울 그 무엇이 매우 중요해졌는데, 이 부분에서 '영식'은 리마스터링의 모범을 제시할 정도로 힘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15편이 '파블라 노바 크리스탈리스' 세계관의 결말을 그린다는 측면에서도 교양의 관점에서 접근할 작품이 되어 버렸다. 파이날 판타지 시리즈에 걸쳐서, 또 플레이스테이션 플랫폼 세대에 걸쳐서.

▲ 굉장히 어둡고 슬픈 이야기가 가득 찬 작품. 그래서 더 2회차 플레이가 의미를 지닌다.

15세 이용가 / 평점 : 9점 (10점 만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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