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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16.06.19 17:27

[단편소설] 프린트범죄

조회 수 160 추천 수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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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jpg

 

내가 여덟 살 때 짭새들이 아빠의 프린터를 박살냈다.

프린터가 뿜어내던 열기와 전자레인지에 식품 포장용 랩을 돌렸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하던 그 냄새,

그리고 아빠가 프린터에 신선한 찐득이를 채워 넣을 때 열중하던 모습과

프린터에서 갓 구워져 나온 물건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짭새들은 문으로 들어오며 곤봉을 휘둘렀고, 그 중 한 명은 확성기를 들고 영장을 낭독했다.

아빠의 고객이 밀고한 것이었다.

정보경찰은 밀고자에게 행동 강화제, 기억 보충제, 신진대사 촉진제 같은 고급 약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그런 것들은 현금보다 더 가치가 있었지만, 누구든지 마음만 먹으면 집에서 직접 프린트해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큰 덩치들이 부엌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곤봉을 휙휙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패고 온갖 것들을 부셔버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짭새들은 할머니가 예전에 살던 나라에서 오실 때 가져온 여행 가방을 박살냈다.

소형 냉장고와 창문 위쪽에 달린 공기 정화기도 부셔버렸다.

내가 기르던 귀여운 새는, 경찰이 큰 군화발로 새장을 짓밟아서 엉킨 프린트 철망 뭉치로 만들어버렸을 때,

새장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겨서 겨우 목숨을 보존했다.

 

cap2.jpg

 

아빠, 그들은 아빠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아빠가 체포되었을 때의 모습은 마치 럭비팀 전체와 한 판 난투극을 벌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들은 아빠를 문 밖으로 끌고 나가, 기자들에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보여준 후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그 사이 경찰 대변인은 아빠가 해적판 밀매 범죄 조직을 운영하면서

최소한 2천만 개 이상의 밀매품에 대한 책임이 있으며,

극악한 범죄자로서 체포시에도 불응하며 저항했다고 발표했다.

 

나는 거실에 남겨진 전화기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봤다.

나는 그 모습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지켜보면서,

어떻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초라한 단층집과 지독히 형편없는 살림살이를 보면서도

그걸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사는 집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프린트를 가져가 전리품이라도 되는 양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프린트가 놓여있던 부엌의 그 조그마한 성소는 끔찍하리만큼 허전해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납작하게 눌린 새장을 집어 들어 불쌍한 새를 구해준 후,

프린터가 있던 자리에 믹서를 올려놓았다.

믹서도 프린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베어링과 구동 부품들을 새로 프린트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프린터가 있었을 때는 프린트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언제든지 분해하고 조립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아빠는 내가 열여덟 살이 되어서야 감옥에서 나왔다.

그동안 나는 아빠를 세 번 면회했다.

내 열 살 생일과 아빠의 쉰 살 생신날, 그리고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아빠를 마지막 본 게 2년 전이었는데, 그 때 아빠는 상태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감옥 안에서의 싸움 때문에 다리를 절룩거렸고, 마치 틱 경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고개를 돌려 어깨 너머로 뒤를 쳐다봤다.

소형 택시가 우리를 집 앞에 내려주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당황스러워서 집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처참하게 망가지고 절룩거리며 해골처럼 삐쩍 마른 아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 했다.

 

cap3.jpg

 

“래니.” 아빠가 나를 앉히며 말했다.

“난 네가 영리한 아이라는 걸 알아. 이 늙은 애비가 어디를 가야 프린터와 찐득이를 구할 수 있을지 너는 알고 있겠지?”

 

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말했다.

“아빠, 아빠는 감옥에 10년 동안이나 갇혀 있었어요. 장장 10년이라고요.

믹서나 약품, 노트북 컴퓨터, 예쁘게 생긴 모자 따위를 프린트하느라 또 10년을 감옥에서 보낼 작정이세요?”

 

아빠가 씩 웃었다.

“래니, 난 바보가 아니야. 그동안 교훈을 얻었어.

모자나 노트북 컴퓨터 따위는 감옥에 갈 정도로 가치가 없어.

난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허접쓰레기를 프린트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빠는 찻잔을 들고 와서 위스키라도 되는 것처럼 한 모금 홀짝하더니, 잔을 쭉 들이켜고 만족스러운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래니, 이리 와봐. 너한테 긴히 해줄 말이 있어.

내가 감옥에서 10년을 보내며 결심한 걸 이야기 해줄게.

이리 와서 이 어리석은 애비의 이야기를 들어봐.”

 

아빠에게 화를 낸 것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건 확실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던 걸까.

“뭔데요. 아빠?” 나는 아빠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물었다.

 

cap4.jpg

 

“래니, 나는 이제 프린터를 프린트할 거야.

더 많은 프린터를 만들어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거야.

그거라면 감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어.

그거라면 어떤 일을 당해도 할 만한 가치가 있어.”

 

 

 
원제: Printcrime (2006년 작)
지은이: Cory Doctorow

번역: 최세진

 

출처: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39/n7073/full/439242a.html
http://craphound.com/?p=573

 

번역판 출처:

http://arzak.tistory.com/5

 

 

 

아빠 일단 여자친구 먼저 프린트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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